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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성택]농협창고/검은 비닐 가방

[윤성택]농협창고/검은 비닐 가방


 

농협창고

 

윤성택

 


제 안을 스스로 까맣게 비워버렸다는 듯 
창문 대신 덧대 박은 녹슨 함석을 걸어놓고 
면사무소 옆 삼각지붕으로 서 있다

가로지른 자물쇠가 붙어 있는 
벽들은 전국 어딜 가도 같은 누런색이다 
인근 간판이 바뀌거나 
낡은 집이 헐릴지라도 시간과 무관한 듯 
한낮 창고 위 풍향계는 쉴새없이 돈다
깜깜한 내부 섬광처럼 뚫려 있는 못구멍들, 
먼지의 환영이 내밀하게 가라앉는 그곳은 
어둠보다 깊은 버뮤다 삼각지대 같다
사라진 빛들이 창고에서 창고로 이동하며 
앞문으로 들어선 소년이 청년이 되어 나오고 
뒷문으로 머리띠를 두른 노인이 걸어나온다  
전송되는 것은 세월뿐 아니어서 
그 많던 포대는 시간의 벽을 통과해 
몇 년 전이나 몇 년 후로 쌓여 있다 
'결사'라는 붉고 서늘한 벽화를 보며 
나는 죽음까지 관통하는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다시는 열릴 것 같지 않은 자물쇠 너머 
한사코 그 안을 들여다본 것인데 
터널 같은 그늘에서 쩍쩍 금이 뻗는다


 

검은 비닐 가방


 

 

사내는 느릿느릿 광장을 가로지른다 
발을 옮길 때마다 두 갈래로 비켜가는 행인들, 
벌어진 틈은 뒤편에서 엇물린다 
시계탑이 그림자를 바짝 당겨와 보도블록을 채워올 때  
사내가 앙다문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길을 질질 끌고 오는 동안 슬픔 따위는 
맞물려놓은 단단한 가방처럼 닫아버렸다 
메슥거려 치미는 핏물을 뱉으며 
사내는 형형해진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늘의 지퍼를 열면 내장이 비워진 
환한 뼈의 숲으로 가는 길이 있으리라 
튀어나온 광대뼈는 오후를 반사한다 
사내는 광장을 고스란히 기억하려는 듯 
디지털카메라로 찡그린, 웃긴, 입 벌린, 풍경을 저장한다 
이렇게 이별은 한낮의 그림파일이다 
대합실로 향할 때 주머니에서 신호음이 울린다
우두커니 고개를 묻고 액정을 보다가 
휴대폰을 그대로 휴지통에 놓아버린다
대합실 의자에 앉은 사내는 마지막 끝까지 
지퍼를 올리고 야전잠바의 깃을 세워 
의자 깊숙이 몸을 누인다 얇은 미소가
사람들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사이 희미해져간다 
사내는 눈을 감는다 
막차가 떠났는데도 꼼짝하지 않는다
지퍼 속으로 머리가 미끄러져간다 

 

- 2006년 《문예중앙》봄호

 

윤성택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2006년 시집 <리트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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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5 17:42 2009/07/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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