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내산면 은행나무
천년고찰 무량사를 둘러보고 부여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부여 내산면에 들렀다
부여 내산면은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 노거수 한그루가 있는 곳이다
전국적으로 은행나무 노거수는 많이 있지만, 수령이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는 어쩐지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천년이란 세월은 그동안 신라와 고려, 조선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던 무수한 세월들이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절의 나무가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고 생각하면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껴지게 된다
오래된 노거수는 그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노거수를 보러 가는 길은 늘 세월의 흔적을 따라 시간여행을 하는듯한 착각속에 빠지게 된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역사에 관한 얄팍한 지식들을 동원해 가며, 나무가 지내왔던 시간들을 추리해 보는 것은 나무여행의
또다른 재미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나무가 있는 내산면 주암리는 폭이 좁은 시골길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야 한다
저 멀리 산 아래에 작은마을이 보이고, 마을 한 가운데에 눈에 띄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시야에 들어온다
나무는 마을에 가까워 질수록 점점 더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 오는데, 그 느낌이 강렬하고 묘하다
은행나무는 이 마을의 당산목답게 마을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데, 마을과 조화를 이룬 나무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지금까지 만나봤던 노거수들 중에서도 첫느낌으로 따지자면 내산면 은행나무는 가장 강렬했던 나무 중에 하나다

멀리서 본 나무의 포스는 상당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무는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듯 많이 노쇠한 모습이다
1,000년이란 세월을 살아 왔으니, 나무의 모습에서 그 만큼의 연륜이 엿보이는건 당연한 일인듯 싶다
이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20호이며, 나무의 높이는 23m, 둘레는 8.6m이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성왕 16년(538)에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당시 좌평 맹씨(孟氏)가 심는 나무라고 전하며,
이를 근거로 추산해 보면 나무의 나이는 1,300살쯤이 된다
이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만큼 전하는 이야기도 상당히 많다
백제와 신라, 고려가 망할때에는 나무에 칡넝쿨이 감고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있었다고 하며,
고려시대 숭각사 주지가 암자를 중수할때는 절의 대들보로 쓰기 위하여 이 나무의 가지를 베어 가다가 급사 하였다고 한다
숭각사는 이후 사찰마져 폐사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전염병이 돌아 소들이 떼죽음을 당할때 이 마을만은 무사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의 영험하고 신령스러움 때문이라하여 인근 마을에서 소를 몰고와 이 나무 주위를 한바퀴 돌고 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나라에 변고가 있을때에도 이 은행나무가 특별한 징후를 보였다고 한다
8. 15호 해방때는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아름드리 가지가 부러졌으며, 6.25사변때는 북쪽의 큰 가지가 부러졌다고 한다
이처럼 마을 사람들은 영험한 이 은행나무를 지금도 정성껏 돌보고 있는데, 매년 1월에는 나무에 제를 올리고 있다
마을 안에 있는 당산목이지만, 나무와 가까운 곳에는 가옥이 없고 토양도 나대지로 남아 있어 나무의 생육환경은 좋은 편이다
나무 보호를 위해서 애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나무의 뿌리 호흡을 위해 뿌리 주변에 유공관을 꽂아 놓았고, 나쁜 기운을 막으려는듯 나무 주위에는 황토도 뿌려 놓았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천년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은행이 많이 달리나 보다. 지난 가을 떨어진 은행들이 나무 아래에 쌓여 있다
다만 오랜 세월 탓인지 나무 곳곳에는 고사된 가지와 부패된 부위가 보이고, 딱따구리 둥지로 보이는 구멍들이 많이 뚫려 있다
나무를 둘러 보는 동안 나무에 구멍을 내기 위해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나를 경계하며 숨바꼭질 하던 딱따구리 녀석를 결국에 찾았다
좀처럼 사진찍을 기회를 주지 않던 녀석인데... 참 오랜만에 보는 딱따구리다
모처럼의 귀한 딱따구리가 반갑기는 한데, 녀석이 나무에 뚫어 놓은 구멍이 너무 많다
나무에 해가 될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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