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이야기
윤정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참석하는 큰 명절이다.
구미에 있는 형님네는 전날 먼저 올라와 있고, 올 추석엔 못 갈것 같다고 하던 제주도의 동서네도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설날 이후 처음으로 3형제가 다 모이는 명절이 된 셈이다.
길은 더디고 답답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태어나 자란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새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떼에 속해 있는 것 같다. 뿔뿔히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 집에
모이는 일이란, 어쩌면 이렇게 힘든 길을 기꺼이 나서게 하는 이상의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그립고, 불편하고, 복잡하고, 힘들고, 설레고, 고단한 길에 우리 네 식구도 동참을 했다.
윤정이때문에 일을 제대로 도울 수 없을것 같아 나는 시댁에 남기로 하였으나, 큰 댁 사촌형들과
메뚜기를 잡겠다고 필규가 나서는 바람에 나도 형님과 동서와 함께 큰 댁에 갔다.
윤정이 뉘여놓고 송편 세개나 빚었을까, 이불위에서 뒤집다가 머리를 바닥에 찧고 칭얼거리는
윤정이때문에 나는 내내 아이만 안고 일하는 형님과 동서 옆에 앉아 있었다.
큰 댁 형님과 전을 부치던 형님은
'애 엄마는 좋겠네. 젖만 물리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되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큰 조카가 윤정이만 했을때 포대기로 업고 온갖 일을 다 해내야 했던
자기의 결혼초가 생각났던 것이다. 자기가 아니면 일할 사람이 없던 형님에 비해, 나는 내 몫 이상을
하는 형님과 동서가 있으니 맘이 편하지 않아도 아이만 않고 있어도 되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형님에게 미안했다.
결혼초엔 첫 며느리라, 동서를 본 다음에는 맏며느리라, 나까지 들어온 다음에는
젖먹이를 키우는 동서를 둔 형님이라 언제나 힘든 일은 제일 많이 해야 하는 형님인것을 알기에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윤정이만 안고 있는 내 마음도 가시방석처럼 불편하고 어려웠다.
큰댁일이 오전중에 다 끝나는 바람에 점심을 먹고 시댁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포대를 들렀다.
잠시 바람이나 쐬고 들어가자고 한 것이 아이들이 하나 둘, 바다로 뛰어드는 바람에
한 시간 넘게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곁에서 모처럼 웃으며 쉴 수 있었다.
추석때 내려와서 바닷가에 들러 논 일은 결혼 후 처음이었다.
남편은 윤정이에게 오래 오래 바다를 보여 주었다.
윤정이가 처음 보는 동해바다다.
어린 딸을 안고 바다를 보여주는 남편의 뒷 모습을 나 역시 오래 바라 보았다.
아빠 품에 안겨 처음 만나는 동해 바다가 윤정이에겐 어떤 느낌으로 새겨지고 있을까..
처녀시절,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때 찾아 왔던 경포대의 밤바다 앞에서 혼자 울던 날들이 떠올랐다.
두 아이와 남편과 함께, 이젠 고향바다가 된 그 바다앞에 서 있다.
지나고 난 일은 어쩌면 이렇게 모두 완전한 모자이크 처럼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인가..
추석 아침 일찍 큰 댁에 가서 차례를 지냈다.
윤정이는 어디를 가나, 늘 방글방글 웃었다.
어른들은 도무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며 이뻐 하셨다.
시댁에 가서도 집에서처럼 밤 아홉시 무렵에 자고 아침 여섯시 경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리듬을
그대로 유지했고, 잘 먹고, 잘 잤다.
일을 하느라 졸려서 나를 찾을때 바로 바로 안아 줄 수 없어서 칭얼거리긴 했지만
윤정이는 너무나 고맙게 잘 지냈다. 윤정이어서 그런지, 딸이어서 그런지, 엄마를 너무 많이 도와준다.
큰댁이 있는 마을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단다.
큰댁과 큰댁이 소유한 솔밭 모두 아파트 부지로 들어가게 된 대가로 10억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일흔 넘으신 큰 아버님에게 쏟아진 돈벼락이다.
부엌 창문으로 보이던 감나무랑, 마당에 피어있던 맨드라미랑, 집 뒤에 멋들어진 솔밭이랑
모두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늑하던 밭들도, 논두렁도, 숲도, 개발에 밀려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고향은 더 좋아지는 것일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큰 부자가 되어 더 행복해지는 것일까.
강릉을 아름답게 하던 솔 숲들이 갈때마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온다.
그 자리엔 건물이 들어서고, 그자리엔 공장이 들어서 버린다.
개발 열풍에 어느 고향인들 이런 사연들이 없을까마는 그냥 그대로 있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자꾸 자꾸 너무 빨리 사라져 버려서 나는 어리둥절하고 슬프다.
혹 내가 가진 땅이 그렇게 되어서 내가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는다면 이런 감상따윈 안 들지도
모르겠다. 아... 세상도, 고향도, 풍경도, 너무 금새 변해 버린다.
선산에 들린 다음에는 꼭 주문진에 있는 시어머님의 어머님 산소엘 들린다.
형제중에 묘를 돌볼 아들이 없어 둘째 딸인 우리 어머님이 자손들을 데리고 성묘를 오시는 것이다.
이 성묘를 위해 따로 제사 음식을 만드는 어머님의 모습을 뵐때마다 이 다음에
우리 부모님 산소를 나와 내 자매들이 이렇게 자손들을 이끌고 찾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추석 다음날, 서로 헤어지기 전에 경포대를 다시 찾아 경포 호수에서 가족 자전거를 탔다.
집안에 힘든 일이 겹쳐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텐데 추석기간 내내
내색않고 힘든 일 도맡아 하시던 형님은 모처럼 혼자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돌았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바로 가까이 있는 친정엔 제대로 들리지도 못하고
시댁에서만 지내며 열심히 일했던 동서도 아이들과 즐겁게 산책을 했다.
나도 윤정이를 안고 남편과 함께 페달을 밟으며 필규랑 노래를 불렀다.
서로 너무 멀리 살아서, 명절때 만나면 일하고 서둘러 떠나기 바빴던 3형제들이
이번엔 이렇게 서로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추석이었다.
속 얘기는 많이 못 나누었지만 함께 같은 추억들을 가지는 것 만으로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사이다.
내게는 참 어렵고, 대단한 형님과 동서지만 이젠 갈등보다는 서로에 대한 연민과 이해와
고마움이 더 크다. 늘 두 사람에 못 미치는 내가 미안하고, 이런 나를 말없이 품어주는
두 사람에게서 내가 가야할 길을 배운다.
아빠 품에 안겨 산길을 오르던 내내 내게 웃음을 보내주던 윤정이가 제일 큰 선물이었다.
내겐 마냥 좋지도, 편하지많도 않은 시댁이지만
윤정이에게는 따듯하고, 그리운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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